바람이 조금씩 냉기를 두르기 시작할 무렵의 밤은 밝게 떠 있는 달과 달리 점차 짙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눈에 띄어야 할 달의 빛은 어둠을 닮은 컴컴한 구름에 가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창백하게 질려 보이게 했다.
안그래도 빽빽한 삼림으로 인해 칙칙해 보이는 이름없는 숲의 모습은 구름의 훼방으로 달빛조차 받지 못해 암흑 그 자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두웠다.
창백한 달빛의 무리를 피해 구름의 그림자 안으로 숨어든 채 바쁘게 날개를 퍼덕이는 새가 보였다.
원래는 하얀 깃털이 자랑거리였으나 신의 저주를 받아 모든 깃털이 검게 그을려 버렸다고 하는 흉조, 까마귀였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 신경을 쓰나 하겠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까마귀의 뒤를 쫓아오는 것들이었다.
피슈-ㅇ
자연적인 현상이라고는 믿기 힘든,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한 불덩어리가 까마귀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까오! 까오옥!"
다급하게 울부짖는 까마귀의 꽁무니에선 이미 어렴풋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슬프게도 까마귀의 비행속도는 불덩어리보다는 살짝 늦은 감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까마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뻔했다.
쾅!
결국 불덩어리는 까마귀를 집어삼키며 그자리에서 폭발해 버렸다. 정통으로 맞은 까마귀는 깃털 몇 개만을 휘날린 채로 증발해 버렸다.
그때, 까마귀가 터져버린 지점에서 기묘한 마법진이 잠시 아른거리더니 웬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지상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허공에 나타난 청년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두 발로 꼿꼿하게 선 채로 까마귀가 흩뿌린 깃털을 하나 집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이..."
그림자에 가리워져 뚜렷한 모습을 알아보긴 힘들지만 청년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은 달빛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뚜렷해서, 어둠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기묘한 녹옥색으로 번들거리는 청년의 안광에는 짙은 살의가 담겨져 있었다.
그 살의는 너무나도 강렬해서, 까마귀의 검은 깃털 마저 녹옥빛으로 빛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청년의 손에 쥐어져 있던 까마귀의 깃털이 순식간에 불타며 사라졌다.
청년은 재빠르게 손을 두어번 휘젓더니,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마법진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어둡던 숲의 밤하늘에서 일어난 일 때문인지 구름은 재빠른 속도로 걷혀갔고, 달빛이 다시금 이리저리 뿌려지자 나름의 생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서서히 밝아지는 숲의 어딘가에서, 까마귀 한 무리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작된 것은, 불꽃의 향연이었다.
콰콰쾅-!